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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만 힘 쓰다간 ‘두 개의 한국’…보이지 않는 벽 없애라/최항섭(사회학과) 교수

  • 11.10.31 / 이영선

2021년 가을, 한국 경제가 세계 5위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고 수도권 도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철수는 학교로 향했다. 철수의 걸음은 무겁다. 제조업체 정규직이던 아버지가 몇 년 전 비정규직이 된 이후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어서다. 5년 넘게 근무했는데도 아버지는 다시 정규직 직원이 되지 못했다. 학교 앞에 도착한 철수는 인근에 있는 자율형 명문 사립 고교의 문을 바라본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간다. 철수는 걸음을 옮겨 자기 학교로 들어선다. 1교시 영어시간, 교실은 난장판이다. 친구들은 수업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잡담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화가 난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신다. “뭐가 되려고 너희들은 이 모양이니.” 교실에는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10년 후 대입 수험생 숫자가 줄어 경쟁률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명문대 진학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서울 명문대로 진학하는 일은 부자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 고교를 나오지 않으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영어 한 과목을 듣는 데 사교육비가 100만원을 넘어 웬만한 집에서는 엄두를 못 낸다.

하굣길에 철수는 대기업 광고판을 본다. 광고학을 공부하려는 철수이지만 대기업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중소기업 취직도 쉽지 않다. 제조업체들이 임금이 싼 해외로 계속 진출하는 데다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0%를 넘어섰다. 3D 업종에 속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이주노동자다. 철수는 암담해짐을 느낀다. ‘나라도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제대로 월급 받고 일해야 할 텐데….’ 그러면서 얼마 전 모의 논술고사 문제로 나온 ‘양극화 해소방안’에 대한 글을 떠올린다. 2011년 어느 대학에서 낸 기출문제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임금 하락, 외국 노동자도 한몫
한국 사회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여건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양극화 속도가 빨라진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세계화·정보화가 진전되면서다. 지니계수나 상대적 빈곤율 같은 여러 가지 지표를 봐도 중간계층이 줄어들고 위와 아래만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도시가구의 지니계수(0.4를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90년 0.26에서 2009년 0.32로 올라섰다가 2010년 0.315로 약간 낮아졌다.

물론 한국보다 더 심각한 나라도 많다. 홍콩·싱가포르는 각각 0.43, 0.42이고 미국은 0.41이었다 수퍼파워로 부상하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칭화대 사회발전연구과제팀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0.47이나 됐다. 사회 갈등을 초래할 위험 수준이다. 하지만 브라질(0.59)보다는 낮은 편이다. 브라질에선 빈곤층 지원 확대정책을 편 노동자당(PT)이 2002년 이후 세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정권을 잡았다. 반면 오래전부터 복지제도를 정착시켜 온 북유럽 국가들은 지니계수가 0.25 안팎에 머문다.

한국 사회도 지금처럼 경제 성장 위주 모델에만 매달린다면 중국·브라질처럼 위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0년 9.8에서 2011년 14.9로 상승했다. 7가구 중 한 가구가 빈곤층임을 의미한다. 비정규직·여성·고령자 노동의 확산 때문이다. 비정규직 숫자는 사실상 8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60∼70밖에 안 된다. 빈부 격차가 커진 최대 이유다. 소득계층 하위 10%의 소득에 대한 상위 10%의 소득을 비교한 ‘10분위 분배율’은 4.7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2배)보다 높다.

비정규직의 임금 하락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는 2009년 말 공식 통계로도 55만 명에 이른다. ‘코리안 드림’을 품은 개도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저임금이든, 3D 업종이든, 중소기업이든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2011년 시간당 4320원인 데 비해 그들은 3500원 안팎에도 일한다. 전 세계 인구 70억명 가운데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주자 수는 2억 1394만 명에 이른다.(유엔인구기금 2011년 보고서) 세계 경제의 불황과 지식정보 관련 산업의 급부상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디어를 토대로 상품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직업이 각광받는 시대다. 그야말로 ‘천재적이지 않고 평범한’ ‘똑똑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들은 대접받기 힘든 세상이다. 국제 경쟁력 제고를 앞세워 이런 추세를 방치한다면 2020년대 한국 사회의 통합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지역 양극화로 ‘지방 공동화’ 가능성
10년 후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2007년 현재 지역내총생산(GRDP)의 추세를 보면 서울의 규모는 부산의 4배, 대구의 8배, 광주·대전의 10배에 달했다. 수도권 집중현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이유다. 세종시와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등 균형발전 정책이 잇따르지만 비(非)수도권 지역은 경제·교육·문화 인프라 등 여러 분야에서 뒤떨어진 상태다. 지역 격차 해소에는 민간기업 투자나 정부 예산이 필요한데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그것 역시 쉽지 않다. 2030년께엔 인구 감소현상과 함께 비수도권 주민 중 절반 정도가 수도권으로 이주할지도 모른다. 지방 공동화가 본격화돼 마치 애니메이션 ‘매트로폴리스’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성벽으로 나뉘어진 사회가 될 수도 있다.

계층·지역 양극화의 기저에는 교육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 사회’로 돼 가고 있다. 서울 강남·목동과 분당·판교·일산 등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2010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전체 계층 가운데 상위 20%의 사교육비는 하위 20%의 5배가 넘는다. 가구당 사교육비는 15만원 정도이지만 상위 20%에서 월 100만원 넘게 사교육비를 지출한다는 이들도 15.2%였다. 도시·농촌 간의 교육비 투자 격차는 만성적이다. 이것이 계층·지역 격차를 구조화하는 측면이 있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대학인 ‘그랑제콜’에 명문 사립고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비슷하다. 교육 격차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계층을 물려주는 계층 재생산을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전국적으로 공교육 부실화를 막고 교사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90년대 후반에 출간된 『세계화의 덫』의 저자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르다 보면 상위 20% 계층과 하위 80% 계층으로 사회가 양분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능력 있고 똑똑하고 이미 부를 축적한 이들의 손으로 부가 더 집중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중산층 붕괴를 예고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브라질·중국과 비교할 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양극화 심화는 분명하지만 객관적인 수치로는 상대적으로 덜 심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들의 심리적인 양극화 지수는 만만치 않다.

외국 노동자 유입 규모·속도 조절 필요
중·하위 계층 사이에선 어느덧 ‘나와는 달리 저 높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그러면서 사회지도층에 대한 부러움과 미움의 감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난다. 어떨 때는 사회지도층의 성공 과정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작용한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 수준이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2005년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사법부·행정부·국회위원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 점수는 100점 만점에 30~50점 밖에 안 된다. 부의 편중에 대해서도 70% 이상이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결과’라고 반응했다. 이들은 양극화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0년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2.4%가 ‘2040년에는 빈부 격차, 도농 격차가 지금보다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양극화 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성장·분배의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하위 계층에 대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높여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을 촉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의 일자리 공급을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속도와 규모를 조절해야 한다. 즉 하위 계층의 생산·고용의 질을 동시에 높일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고용의 질이 양극화될 경우엔 생활의 질을 보정하는 정책들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2031년 대학 졸업 뒤 몇 년간 ‘청년 백수’였던 철수는 가까스로 중소 광고업체에 입사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대학 등록금 융자와 취업 준비를 하느라 빚이 5000만원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000만원씩 갚아 나가도 5년 이상 걸릴 것 같다. 퇴근길 버스에서 철수는 광화문광장에서 양극화 성토시위를 목격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정부도 양극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는다. 부유층 세금을 늘리되 하위 계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주내용이다. 몇 년 전에는 사교육 금지법도 통과됐다. 조만간 수도권 인구 총량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철수는 중얼거린다. “진작 좀 그랬으면 좋았을 걸.”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3641

출처 : 중앙SUNDAY 기사입력 2011-10-30

성장만 힘 쓰다간 ‘두 개의 한국’…보이지 않는 벽 없애라/최항섭(사회학과) 교수

2021년 가을, 한국 경제가 세계 5위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고 수도권 도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철수는 학교로 향했다. 철수의 걸음은 무겁다. 제조업체 정규직이던 아버지가 몇 년 전 비정규직이 된 이후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어서다. 5년 넘게 근무했는데도 아버지는 다시 정규직 직원이 되지 못했다. 학교 앞에 도착한 철수는 인근에 있는 자율형 명문 사립 고교의 문을 바라본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간다. 철수는 걸음을 옮겨 자기 학교로 들어선다. 1교시 영어시간, 교실은 난장판이다. 친구들은 수업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잡담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화가 난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신다. “뭐가 되려고 너희들은 이 모양이니.” 교실에는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10년 후 대입 수험생 숫자가 줄어 경쟁률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명문대 진학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서울 명문대로 진학하는 일은 부자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 고교를 나오지 않으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영어 한 과목을 듣는 데 사교육비가 100만원을 넘어 웬만한 집에서는 엄두를 못 낸다.

하굣길에 철수는 대기업 광고판을 본다. 광고학을 공부하려는 철수이지만 대기업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중소기업 취직도 쉽지 않다. 제조업체들이 임금이 싼 해외로 계속 진출하는 데다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0%를 넘어섰다. 3D 업종에 속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이주노동자다. 철수는 암담해짐을 느낀다. ‘나라도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제대로 월급 받고 일해야 할 텐데….’ 그러면서 얼마 전 모의 논술고사 문제로 나온 ‘양극화 해소방안’에 대한 글을 떠올린다. 2011년 어느 대학에서 낸 기출문제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임금 하락, 외국 노동자도 한몫
한국 사회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여건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양극화 속도가 빨라진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세계화·정보화가 진전되면서다. 지니계수나 상대적 빈곤율 같은 여러 가지 지표를 봐도 중간계층이 줄어들고 위와 아래만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도시가구의 지니계수(0.4를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90년 0.26에서 2009년 0.32로 올라섰다가 2010년 0.315로 약간 낮아졌다.

물론 한국보다 더 심각한 나라도 많다. 홍콩·싱가포르는 각각 0.43, 0.42이고 미국은 0.41이었다 수퍼파워로 부상하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칭화대 사회발전연구과제팀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0.47이나 됐다. 사회 갈등을 초래할 위험 수준이다. 하지만 브라질(0.59)보다는 낮은 편이다. 브라질에선 빈곤층 지원 확대정책을 편 노동자당(PT)이 2002년 이후 세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정권을 잡았다. 반면 오래전부터 복지제도를 정착시켜 온 북유럽 국가들은 지니계수가 0.25 안팎에 머문다.

한국 사회도 지금처럼 경제 성장 위주 모델에만 매달린다면 중국·브라질처럼 위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0년 9.8에서 2011년 14.9로 상승했다. 7가구 중 한 가구가 빈곤층임을 의미한다. 비정규직·여성·고령자 노동의 확산 때문이다. 비정규직 숫자는 사실상 8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60∼70밖에 안 된다. 빈부 격차가 커진 최대 이유다. 소득계층 하위 10%의 소득에 대한 상위 10%의 소득을 비교한 ‘10분위 분배율’은 4.7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2배)보다 높다.

비정규직의 임금 하락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는 2009년 말 공식 통계로도 55만 명에 이른다. ‘코리안 드림’을 품은 개도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저임금이든, 3D 업종이든, 중소기업이든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2011년 시간당 4320원인 데 비해 그들은 3500원 안팎에도 일한다. 전 세계 인구 70억명 가운데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주자 수는 2억 1394만 명에 이른다.(유엔인구기금 2011년 보고서) 세계 경제의 불황과 지식정보 관련 산업의 급부상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디어를 토대로 상품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직업이 각광받는 시대다. 그야말로 ‘천재적이지 않고 평범한’ ‘똑똑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들은 대접받기 힘든 세상이다. 국제 경쟁력 제고를 앞세워 이런 추세를 방치한다면 2020년대 한국 사회의 통합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지역 양극화로 ‘지방 공동화’ 가능성
10년 후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2007년 현재 지역내총생산(GRDP)의 추세를 보면 서울의 규모는 부산의 4배, 대구의 8배, 광주·대전의 10배에 달했다. 수도권 집중현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이유다. 세종시와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등 균형발전 정책이 잇따르지만 비(非)수도권 지역은 경제·교육·문화 인프라 등 여러 분야에서 뒤떨어진 상태다. 지역 격차 해소에는 민간기업 투자나 정부 예산이 필요한데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그것 역시 쉽지 않다. 2030년께엔 인구 감소현상과 함께 비수도권 주민 중 절반 정도가 수도권으로 이주할지도 모른다. 지방 공동화가 본격화돼 마치 애니메이션 ‘매트로폴리스’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성벽으로 나뉘어진 사회가 될 수도 있다.

계층·지역 양극화의 기저에는 교육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 사회’로 돼 가고 있다. 서울 강남·목동과 분당·판교·일산 등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2010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전체 계층 가운데 상위 20%의 사교육비는 하위 20%의 5배가 넘는다. 가구당 사교육비는 15만원 정도이지만 상위 20%에서 월 100만원 넘게 사교육비를 지출한다는 이들도 15.2%였다. 도시·농촌 간의 교육비 투자 격차는 만성적이다. 이것이 계층·지역 격차를 구조화하는 측면이 있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대학인 ‘그랑제콜’에 명문 사립고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비슷하다. 교육 격차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계층을 물려주는 계층 재생산을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전국적으로 공교육 부실화를 막고 교사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90년대 후반에 출간된 『세계화의 덫』의 저자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르다 보면 상위 20% 계층과 하위 80% 계층으로 사회가 양분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능력 있고 똑똑하고 이미 부를 축적한 이들의 손으로 부가 더 집중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중산층 붕괴를 예고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브라질·중국과 비교할 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양극화 심화는 분명하지만 객관적인 수치로는 상대적으로 덜 심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들의 심리적인 양극화 지수는 만만치 않다.

외국 노동자 유입 규모·속도 조절 필요
중·하위 계층 사이에선 어느덧 ‘나와는 달리 저 높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그러면서 사회지도층에 대한 부러움과 미움의 감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난다. 어떨 때는 사회지도층의 성공 과정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작용한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 수준이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2005년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사법부·행정부·국회위원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 점수는 100점 만점에 30~50점 밖에 안 된다. 부의 편중에 대해서도 70% 이상이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결과’라고 반응했다. 이들은 양극화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0년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2.4%가 ‘2040년에는 빈부 격차, 도농 격차가 지금보다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양극화 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성장·분배의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하위 계층에 대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높여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을 촉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의 일자리 공급을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속도와 규모를 조절해야 한다. 즉 하위 계층의 생산·고용의 질을 동시에 높일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고용의 질이 양극화될 경우엔 생활의 질을 보정하는 정책들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2031년 대학 졸업 뒤 몇 년간 ‘청년 백수’였던 철수는 가까스로 중소 광고업체에 입사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대학 등록금 융자와 취업 준비를 하느라 빚이 5000만원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000만원씩 갚아 나가도 5년 이상 걸릴 것 같다. 퇴근길 버스에서 철수는 광화문광장에서 양극화 성토시위를 목격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정부도 양극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는다. 부유층 세금을 늘리되 하위 계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주내용이다. 몇 년 전에는 사교육 금지법도 통과됐다. 조만간 수도권 인구 총량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철수는 중얼거린다. “진작 좀 그랬으면 좋았을 걸.”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3641

출처 : 중앙SUNDAY 기사입력 201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