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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가가 디자인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 안진호(행정학과) 겸임교수

  • 20.06.17 / 박윤진

'간과(看過)'는 '큰 관심 없이 대강 보아 넘기다'라는 뜻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소재·부품 산업의 중요성을 간과했기에 국가적으로 큰 위험에 빠졌다. 이전까지 일본에서 값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받아 왔기 때문에 자체 경쟁력을 기르지 못했다. 결국 그 대가로 지금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산업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디자인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저자는 지난해 3개월 동안 30곳 이상 글로벌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중견·대기업 디자인 담당자, 그들의 파트너인 유명 디자인기업 전·현직 실무자와 책임자를 인터뷰했다. 그 안에서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와 발전 방향을 찾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디자인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발견했다.

디자인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만이 아니다. 디자인은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큰 매력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아름다움에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의 지향점인 사람 마음, 즉 경험을 헤아리는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자이너가 다루는 업무는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기업 외부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흔히 잘나간다는 기업들은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는 핵심 디자인 업무는 아웃소싱하지 않고 내부 전문 디자인 인력이 직접 진행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아웃소싱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에 국한됐다. 초급 수준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들에 한정되고 있다.

결국 디자인 아웃소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비중도 약하기 때문에 관련 비용도 그 정도 수준에서 최소 비용만을 책정해 지급한다. 이에 따라 이들과 거래하는 디자인 기업들은 일거리는 점차 줄어들고, 용역비용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의 '수요공급 법칙'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 관점에서 디자인 아웃소싱 시장 동향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디자인 아웃소싱 수요는 줄어들었다.

실제로 디자인 강국이라는 이탈리아 디자인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중국 기업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우리나라 기업과 비슷하거나 더 저가로 입찰에 참여한다. 우리보다 디자인 수준이 높다는 일본 디자인 기업조차 그들이 받는 디자인 아웃소싱 대가는 우리나라 디자인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다.

앞으로 특수한 분야의 역량을 갖춘 디자인 전문 기업은 있어도 디자인의 산업적 경쟁력을 기른 나라는 없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디자인은 창의 영역이다. 통제보다 자율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것보다 민간 자율로 발전하는 것이 적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최고 수준의 창의 역량을 보유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제 단순히 산업 관점에서만 디자인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국가의 디자인 경쟁력 저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길러야 한다.

거시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디자인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지식 자산으로 가치를 정의하고 평가하기는 모호하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기르지 않으면 누구도 그 가치를 알 수 없고, 지킬 수 없다.

이대로 둔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린 것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디자인 산업은 단순히 시장 논리에만 맡기면 안 된다. 이것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디자인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소재·부품에 대한 뒤늦은 대응으로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했듯이 지금 디자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동일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디자인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단기 성과를 독촉하기보다 디자인 연구개발(R&D)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술·산업·문화 측면에서 전략적 입지 선택이 필요하다. 글로벌 산업 재편 과정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 산업 경쟁력 강화는 필수다.

안진호 아이디이노랩 대표(국민대 겸임교수) pibuchi@gmail.com

 

원문보기: https://www.etnews.com/2020061500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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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가가 디자인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 안진호(행정학과) 겸임교수

'간과(看過)'는 '큰 관심 없이 대강 보아 넘기다'라는 뜻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소재·부품 산업의 중요성을 간과했기에 국가적으로 큰 위험에 빠졌다. 이전까지 일본에서 값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받아 왔기 때문에 자체 경쟁력을 기르지 못했다. 결국 그 대가로 지금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산업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디자인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저자는 지난해 3개월 동안 30곳 이상 글로벌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중견·대기업 디자인 담당자, 그들의 파트너인 유명 디자인기업 전·현직 실무자와 책임자를 인터뷰했다. 그 안에서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와 발전 방향을 찾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디자인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발견했다.

디자인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만이 아니다. 디자인은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큰 매력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아름다움에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의 지향점인 사람 마음, 즉 경험을 헤아리는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자이너가 다루는 업무는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기업 외부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흔히 잘나간다는 기업들은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는 핵심 디자인 업무는 아웃소싱하지 않고 내부 전문 디자인 인력이 직접 진행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아웃소싱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에 국한됐다. 초급 수준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들에 한정되고 있다.

결국 디자인 아웃소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비중도 약하기 때문에 관련 비용도 그 정도 수준에서 최소 비용만을 책정해 지급한다. 이에 따라 이들과 거래하는 디자인 기업들은 일거리는 점차 줄어들고, 용역비용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의 '수요공급 법칙'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 관점에서 디자인 아웃소싱 시장 동향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디자인 아웃소싱 수요는 줄어들었다.

실제로 디자인 강국이라는 이탈리아 디자인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중국 기업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우리나라 기업과 비슷하거나 더 저가로 입찰에 참여한다. 우리보다 디자인 수준이 높다는 일본 디자인 기업조차 그들이 받는 디자인 아웃소싱 대가는 우리나라 디자인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다.

앞으로 특수한 분야의 역량을 갖춘 디자인 전문 기업은 있어도 디자인의 산업적 경쟁력을 기른 나라는 없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디자인은 창의 영역이다. 통제보다 자율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것보다 민간 자율로 발전하는 것이 적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최고 수준의 창의 역량을 보유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제 단순히 산업 관점에서만 디자인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국가의 디자인 경쟁력 저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길러야 한다.

거시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디자인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지식 자산으로 가치를 정의하고 평가하기는 모호하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기르지 않으면 누구도 그 가치를 알 수 없고, 지킬 수 없다.

이대로 둔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린 것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디자인 산업은 단순히 시장 논리에만 맡기면 안 된다. 이것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디자인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소재·부품에 대한 뒤늦은 대응으로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했듯이 지금 디자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동일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디자인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단기 성과를 독촉하기보다 디자인 연구개발(R&D)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술·산업·문화 측면에서 전략적 입지 선택이 필요하다. 글로벌 산업 재편 과정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 산업 경쟁력 강화는 필수다.

안진호 아이디이노랩 대표(국민대 겸임교수) pibuchi@gmail.com

 

원문보기: https://www.etnews.com/2020061500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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