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관리’ 없는 세계화의 덫/정승일 (국민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 06.03.15 / 박정석
[한겨레 2006-03-14 18:03]

[한겨레]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시장개혁이란 이름 아래 대외개방 전면화와 경제구조의 시장화, 미국화를 진행하여 왔다. 이 기조는 참여정부에서도 지속되어 2005년 봄 정부는 ‘선진통상 국가’를 선언하고 11월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는 ‘무역과 투자의 세계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더 급진적인 개방과 시장화, 미국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8년의 개방과 시장화, 미국화만으로도 심각한 기업간, 산업간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겪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과 결합된 기업 지배구조 개혁 및 금융 개혁의 결과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투자의사 결정과 자금 조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그 결과 기업들의 장기투자가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사이에, 그리고 성장 업종과 비성장 업종 사이에 극심하게 양극화하고 있다.

곧 이미 글로벌 기술 경쟁력과 브랜드를 획득하고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좋은 소수의 수출 대기업들에서는 자본시장과 은행 등 금융권의 관심과 함께 높은 누적현금을 기초로 적극적인 기술혁신 투자 및 설비 투자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에서는 자본시장과 은행 지원도 없고 스스로도 장기투자를 향한 의지도, 내부자금도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간, 산업간 양극화는 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 노출되어 미국식 경영관행과 조직관행을 도입한 대기업들은 단기 수익성 확보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건비 절약과 하청단가 절약 등에 나서고, 그 결과는 비정규직 증가와 생계형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위기로 나타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비지출 감소는 내수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으며, 매출이 순조로운 수출업 하청기업들도 납품단가 인하라는 타격을 받고 있다. 게다가 임금이 싼 중국과 북한의 등장은 기업간·산업간 양극화를 더욱 부추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초래할 심각한 양극화 현상에 대하여 참여정부는 취약업종과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의 자신감은 집권 후반기 정책기조로 표방된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병행추진’에서 잘 나타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분명 반세계화 물결에 동참할 수는 없으며 세계화 참여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참여정부 역시 무방비적 세계화가 초래하는 위험을 인지한 까닭에 사회안전망 확충 등 ‘관리된 세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대안 없는 반세계화’보다는 ‘관리된 세계화’가 일반론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추진되는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병행 추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경제는 이미 개방될 대로 개방되었으며, 지금은 ‘세계화’가 아난 ‘관리’ 혹은 ‘방비’에 방점을 찍을 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양한 양극화 해소 조처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한다. 교육 공공성 강화와 의료 공공성 강화는 교육 및 의료시장 개방 요구와 부딪친다. 지방 중소기업과 농업의 미래적 구조조정과 업종 고도화에 필요한 지역 재투자법 등 대안적 금융제도 도입은 미국 금융업계의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존의 개방과 시장화가 초래한 심각한 문제점과 위험에 대처할 대내적 조절장치와 제도들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에만도 우리 사회는 오랜 논의와 준비기간을 필요로 한다. 가령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 조세개혁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 논의와 함께 사회 양극화 해소책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일에도 짧게는 수년, 길면 십년이 걸릴 수 있다. 또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자발적으로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재벌 등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청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논의하고 정착시키는 일에만도 십년이 훌쩍 가 버릴 것이다. 미국계 투자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적대적 인수합병(M&A) 활성화가 국민경제와 기업에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기업 지배권 방어장치 마련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하는 문제에서도 우리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로 한 칼에 나누기 힘든 혼란스런 논쟁구도를 보이는 형국인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듯 다양한 방비책을 통해 관리장치를 마련하는 일에는 치열한 사회적, 정치적 논쟁과 함께 긴 시간이 걸리는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한 파괴 위협은 즉각적이다. 병 주고 약주는 것이 아니라 약을 준비하기도 전에 병을 악화시킨다면 환자에게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병은 취약업종과 취약계층만이 아니라 주력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 경제의 핵심까지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

정승일/국민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관리’ 없는 세계화의 덫/정승일 (국민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한겨레 2006-03-14 18:03]

[한겨레]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시장개혁이란 이름 아래 대외개방 전면화와 경제구조의 시장화, 미국화를 진행하여 왔다. 이 기조는 참여정부에서도 지속되어 2005년 봄 정부는 ‘선진통상 국가’를 선언하고 11월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는 ‘무역과 투자의 세계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더 급진적인 개방과 시장화, 미국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8년의 개방과 시장화, 미국화만으로도 심각한 기업간, 산업간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겪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과 결합된 기업 지배구조 개혁 및 금융 개혁의 결과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투자의사 결정과 자금 조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그 결과 기업들의 장기투자가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사이에, 그리고 성장 업종과 비성장 업종 사이에 극심하게 양극화하고 있다.

곧 이미 글로벌 기술 경쟁력과 브랜드를 획득하고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좋은 소수의 수출 대기업들에서는 자본시장과 은행 등 금융권의 관심과 함께 높은 누적현금을 기초로 적극적인 기술혁신 투자 및 설비 투자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에서는 자본시장과 은행 지원도 없고 스스로도 장기투자를 향한 의지도, 내부자금도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간, 산업간 양극화는 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 노출되어 미국식 경영관행과 조직관행을 도입한 대기업들은 단기 수익성 확보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건비 절약과 하청단가 절약 등에 나서고, 그 결과는 비정규직 증가와 생계형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위기로 나타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비지출 감소는 내수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으며, 매출이 순조로운 수출업 하청기업들도 납품단가 인하라는 타격을 받고 있다. 게다가 임금이 싼 중국과 북한의 등장은 기업간·산업간 양극화를 더욱 부추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초래할 심각한 양극화 현상에 대하여 참여정부는 취약업종과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의 자신감은 집권 후반기 정책기조로 표방된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병행추진’에서 잘 나타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분명 반세계화 물결에 동참할 수는 없으며 세계화 참여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참여정부 역시 무방비적 세계화가 초래하는 위험을 인지한 까닭에 사회안전망 확충 등 ‘관리된 세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대안 없는 반세계화’보다는 ‘관리된 세계화’가 일반론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추진되는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병행 추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경제는 이미 개방될 대로 개방되었으며, 지금은 ‘세계화’가 아난 ‘관리’ 혹은 ‘방비’에 방점을 찍을 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양한 양극화 해소 조처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한다. 교육 공공성 강화와 의료 공공성 강화는 교육 및 의료시장 개방 요구와 부딪친다. 지방 중소기업과 농업의 미래적 구조조정과 업종 고도화에 필요한 지역 재투자법 등 대안적 금융제도 도입은 미국 금융업계의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존의 개방과 시장화가 초래한 심각한 문제점과 위험에 대처할 대내적 조절장치와 제도들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에만도 우리 사회는 오랜 논의와 준비기간을 필요로 한다. 가령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 조세개혁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 논의와 함께 사회 양극화 해소책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일에도 짧게는 수년, 길면 십년이 걸릴 수 있다. 또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자발적으로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재벌 등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청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논의하고 정착시키는 일에만도 십년이 훌쩍 가 버릴 것이다. 미국계 투자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적대적 인수합병(M&A) 활성화가 국민경제와 기업에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기업 지배권 방어장치 마련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하는 문제에서도 우리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로 한 칼에 나누기 힘든 혼란스런 논쟁구도를 보이는 형국인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듯 다양한 방비책을 통해 관리장치를 마련하는 일에는 치열한 사회적, 정치적 논쟁과 함께 긴 시간이 걸리는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한 파괴 위협은 즉각적이다. 병 주고 약주는 것이 아니라 약을 준비하기도 전에 병을 악화시킨다면 환자에게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병은 취약업종과 취약계층만이 아니라 주력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 경제의 핵심까지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

정승일/국민대 경제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