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악성 정치 계절병] 치유법 / 김형준(정치) 교수

  • 05.12.19 / 송효순

[한겨레 2005-12-18 18:09]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정치권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나라당은 예산 심의 등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한 채 장외투쟁에 돌입했고, 마침내 사학법 원천 무효화를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까지 벌였다. 정기국회가 막을 내리는 12월만 접어들면 왜 한국 정치는 ‘국민 무시’ ‘국회 파행’이라는 ‘악성 정치 계절병’에 시달리는가? 정당이 민주화될수록 오히려 국회가 파행되는 역설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국 정치의 경험적 법칙에 따르면 여론과 당내 의견이 무시된 채 당 대표의 의지에 따라 당의 행보가 결정되는 전근대적인 ‘1인 지배 정당 구조’가 비생산적이고 파행적인 정치 갈등을 고착화하는 결정 요인이다. 지난해 연말의 국가보안법 개정과 올해 사학법 개정 과정에서 보듯이 당 대표의 생각과 의지가 바로 당론화되어 당의 행보를 결정짓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당의 목적은 비리척결 대신 사학 지배구조를 바꾸고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 전교조에 사학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반미와 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는 이들에게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학법 개정과 관련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박 대표의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국민들의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보수 계층에서 박 대표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비율이 41.0%이고, ‘공감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40.6%로 큰 차이가 없었다. 안정희구 세력에서도 그 비율은 40.7%와 40.3%로 별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계층이라 할 수 있는 보수·안정 세력에서 이런 여론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을 국가 정체성과 이념 문제로 바로 연계하는 것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비약된 것인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학법 개정을 곧 ‘전교조의 사학 경영권 침해와 친북·반미 이념 주입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접근이자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며 당내 색깔론의 급부상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당 안팎 여론이 이러한데도 당 지도부가 결심을 하면 의원들은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구조가 아직까지 한국 정당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학법을 둘러싸고 이러한 왜곡된 정당 구조가 야당을 극한투쟁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여당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한국 정치가 새롭게 태어나 국민의 신뢰를 받고 국회 파행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제대로 끊기 위해서는 왜곡된 정당 구조를 정상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원외 당 대표직을 폐지하고 비대한 중앙당과 강제적 당론이 개별 의원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외가 아니라 국회가 정당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라도 당론은 필수적이고 대표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허황된 책임 정치론’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누군가 정치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정치는 눈물을 닦아 주기는커녕 고통을 줘서 오히려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여야 개별 의원들은 소신을 갖고 똘똘 뭉쳐 왜곡된 정당 구조를 정상화하는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또한,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을 넘어 서민들에게 잃었던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만이 비로소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악성 계절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국민대 교수·정치학

[악성 정치 계절병] 치유법 / 김형준(정치) 교수

[한겨레 2005-12-18 18:09]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정치권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나라당은 예산 심의 등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한 채 장외투쟁에 돌입했고, 마침내 사학법 원천 무효화를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까지 벌였다. 정기국회가 막을 내리는 12월만 접어들면 왜 한국 정치는 ‘국민 무시’ ‘국회 파행’이라는 ‘악성 정치 계절병’에 시달리는가? 정당이 민주화될수록 오히려 국회가 파행되는 역설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국 정치의 경험적 법칙에 따르면 여론과 당내 의견이 무시된 채 당 대표의 의지에 따라 당의 행보가 결정되는 전근대적인 ‘1인 지배 정당 구조’가 비생산적이고 파행적인 정치 갈등을 고착화하는 결정 요인이다. 지난해 연말의 국가보안법 개정과 올해 사학법 개정 과정에서 보듯이 당 대표의 생각과 의지가 바로 당론화되어 당의 행보를 결정짓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당의 목적은 비리척결 대신 사학 지배구조를 바꾸고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 전교조에 사학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반미와 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는 이들에게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학법 개정과 관련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박 대표의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국민들의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보수 계층에서 박 대표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비율이 41.0%이고, ‘공감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40.6%로 큰 차이가 없었다. 안정희구 세력에서도 그 비율은 40.7%와 40.3%로 별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계층이라 할 수 있는 보수·안정 세력에서 이런 여론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을 국가 정체성과 이념 문제로 바로 연계하는 것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비약된 것인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학법 개정을 곧 ‘전교조의 사학 경영권 침해와 친북·반미 이념 주입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접근이자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며 당내 색깔론의 급부상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당 안팎 여론이 이러한데도 당 지도부가 결심을 하면 의원들은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구조가 아직까지 한국 정당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학법을 둘러싸고 이러한 왜곡된 정당 구조가 야당을 극한투쟁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여당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한국 정치가 새롭게 태어나 국민의 신뢰를 받고 국회 파행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제대로 끊기 위해서는 왜곡된 정당 구조를 정상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원외 당 대표직을 폐지하고 비대한 중앙당과 강제적 당론이 개별 의원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외가 아니라 국회가 정당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라도 당론은 필수적이고 대표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허황된 책임 정치론’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누군가 정치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정치는 눈물을 닦아 주기는커녕 고통을 줘서 오히려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여야 개별 의원들은 소신을 갖고 똘똘 뭉쳐 왜곡된 정당 구조를 정상화하는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또한,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을 넘어 서민들에게 잃었던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만이 비로소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악성 계절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국민대 교수·정치학